2025년 상반기, 많은 이들이 기다리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드디어 시청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이유와 박보검, 두 스타의 만남만으로도 엄청난 화제를 모았던 이 작품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닌, 제주라는 섬의 시간과 삶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사람의 일생과 그 곁을 지키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시대를 품은 스토리 요약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 방언으로 "정말 수고했어요"라는 의미의 제목처럼, 인생이라는 게 늘 그렇듯… 이 드라마는 우리가 상상한 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사랑 하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과 감정의 파도를 보여줍니다.
주인공 애순(아이유)은 시인이 되고 싶은 꿈을 가진 소녀입니다. 그녀가 자란 곳은 1950년대 제주. 말이 제주지, 그 시대는 여성에게 ‘꿈’이라는 단어조차 허락되지 않던 때였습니다. 가난하고, 보수적인 분위기 속에서 애순은 가족을 위해 자기를 늘 한 발 뒤로 미룹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시를 담고 사는 그녀는 세상의 한가운데에 나가보고 싶은 욕망을 지니고 있죠.
그리고 관식(박보검)이 있습니다. 애순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때로는 형처럼, 때로는 동반자처럼 곁을 지켜주는 인물입니다. 묵묵하고 따뜻한 사람. 제주라는 땅과 사람을 품고 살아가는 그는 애순을 지켜보며 삶의 방향을 고민하게 됩니다.
드라마는 애순과 관식이 10대의 풋풋함부터 70대가 되어버린 현재까지, 긴 세월 동안 서로의 인생을 어떻게 지켜봐왔는지를 현재-과거를 오가며 교차 서사로 풀어냅니다. 누구보다 가까웠지만 늘 어긋나 있었던 두 사람의 인연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한숨, 미소, 눈물이 반복되게 만듭니다.
특별한 사건보다는 인생의 작은 굴곡들 – 결혼, 이별, 가족, 죽음 – 속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이기에 더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 잊히지 않습니다.
인물관계, ‘애순’과 ‘관식’ 그리고 삶
‘폭싹 속았수다’는 결국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특히 아이유가 연기한 ‘애순’이라는 인물은 매우 복잡하고 현실적입니다. 단순히 감성적인 시인을 꿈꾸는 소녀가 아닙니다. 어린 시절부터 삶을 이겨내야 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생활형 인간이었죠. 그러면서도 결코 자기의 마음을 배신하지 않는 사람, 그게 애순입니다.
그녀는 서울로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고, 글을 쓰고 싶었지만 생계를 위해 포기했고, 사랑을 알지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관객의 마음을 더 먹먹하게 만듭니다.
관식은 그런 애순을 보며 늘 한걸음 뒤에서 지켜봅니다. 감정을 크게 드러내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의 선택과 행동 하나하나가 진심을 말해줍니다. 그는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주지는 못했지만,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인물이죠.
두 사람은 분명 서로를 사랑했지만, 시대와 환경, 그리고 개인의 선택들 속에서 반복적으로 멀어지고 또 다시 다가옵니다. 이 관계는 단순히 ‘사랑했다, 이뤄졌다’의 공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대로 두어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만듭니다.
이 외에도 애순의 가족, 동네 친구들, 관식의 주변 인물들이 스토리 속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특히 애순의 아버지는 시대의 아버지상을, 친구 ‘춘자’는 여성의 또 다른 삶의 모습을, 문학계 인물들은 당시의 문화 현실을 반영합니다. 모든 인물이 단선적이지 않고, 다층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어 몰입도가 높습니다.
감상 포인트: 잔잔한데 오래 남는다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나면, 확실히 느껴지는 게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크게 감동을 준다”기보다는, “오래 기억에 남는” 이야기라는 것.
첫 번째 감상 포인트는 ‘시간의 흐름을 품은 구성’입니다. 1950년대의 제주, 청춘의 시절, 그리고 노년의 회상까지. 각 시기마다 조명이 다르고, 말투가 달라지고, 풍경이 달라지면서 인물의 변화도 자연스럽게 스며듭니다. 특히 애순의 시선에서 그려지는 회상 장면들은 시 같은 영상미와 감정의 층을 더합니다.
두 번째는 배우들의 연기입니다. 아이유는 기존 드라마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깊이 있는 감정선을 보여줍니다. 초반부의 사춘기 소녀부터, 절망과 체념을 지나 어른이 되는 과정까지 표정 하나, 말투 하나로 그 세월을 설득력 있게 표현해냅니다. 박보검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관식’을 정적인 연기로 소화해, 이 역할에 딱 맞는 느낌을 줍니다.
세 번째는 ‘제주’라는 공간 자체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제주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의 또 다른 주인공입니다. 해녀, 오름, 감귤밭, 바닷바람, 방언… 모든 것이 이야기의 정서를 깊게 만듭니다. 거기에 더해진 OST는 그 장면을 더 오래 머무르게 하죠. 특히 '기억해 둘게', '우리의 섬' 같은 곡은 드라마의 분위기를 완성시킵니다.
명장면을 꼽자면, 관식이 애순의 시집을 몰래 사서 바닷가에서 읽는 장면, 그리고 나이든 애순이 혼자 앉아 과거의 자신과 대화하듯 읊조리는 장면은 말 없이 눈물을 자아내는 순간입니다.
삶은 시가 되고, 드라마는 기억이 된다
‘폭싹 속았수다’는 드라마라기보다 한 편의 삶을 시처럼 보여주는 긴 영상 일기 같았습니다. 이 작품을 보면 나도 모르게 돌아보게 됩니다. “나도 누군가의 관식이었을까?”, “내 안의 애순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고요.
아이유와 박보검이 보여주는 연기는 그 자체로 선물이고, 제주의 풍경과 삶의 온도는 그들의 이야기에 따뜻함을 덧입힙니다.
인생이란 건 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죠. 그 안에서 사랑하고, 잃고, 후회하고, 다시 웃게 되는 우리 모두에게 이 드라마는 꼭 한 번 봐야 할 작품입니다. 2025년 봄, 가장 아름답고 조용한 이야기를 찾고 있다면 ‘폭싹 속았수다’, 지금이 시작할 타이밍입니다.